무너진 벽 앞에서, 나의 마음도 조금씩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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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낡은 것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나는 무너진 벽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내 안의 말들이 줄어든다.
크게 감탄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지만
그저 마음 한편이 조용히 내려앉는 걸 느낀다.
그 벽이 예전엔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위에 얹힌 돌과 벽돌, 조용히 흘러가는 균열의 결들이
내가 애써 감추고 있던 생각들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우리는 보통 무너진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다시 세워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폐허는
내게 ‘그냥 그렇게 두어도 된다’는 감정을 준다.
무너지면 무너진 채,
기울면 기운 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나는 그 앞에 서서 깨닫게 된다.

무너진 벽 앞에서, 나의 마음도 조금씩 내려앉았다

 

2. 폐허는 때때로 나보다 더 정직하다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을지도 모를 무너진 공간을 지나며
나는 그 안에 나 자신을 비추게 된다.
지금의 나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표면만 괜찮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닐 수 있다는 걸
폐허는 아무 말 없이 보여준다.

누군가는 폐허 앞에서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낡은 벽을 배경 삼아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 모든 행위가 의미 없진 않지만
가끔은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이
가장 깊은 감정과 마주하는 방법이 된다.

나는 무너진 벽 앞에서 스스로에게 더 정직해진다.
그 공간은 나에게
“힘들면 무너져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3. 멀쩡함이라는 감정의 외피를 벗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괜찮은 척,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도 오랫동안 그런 외피를 입고 살아왔다.
하지만 폐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외피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건 고통스럽기보다 오히려 편안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벽 앞에서
나는 나답게 울 수도 있었고,
굳이 이유 없이도 오래 멍하니 서 있을 수 있었다.
누구도 날 평가하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폐허는 감정을 흘려보내기에 좋은 장소다.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말로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조용히, 조금씩 흘러내리는 감정의 형태
바로 그곳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4. 무너짐을 받아들이는 태도, 감정 기록자로서의 시선

이제는 폐허 앞에 서면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는 부담보다
‘그냥 느껴도 괜찮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브이로그를 찍는다면 거창한 구성이 아니라
소리 없이 걷는 장면 하나,
멈춰 선 벽을 10초 정도 바라보는 장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구조가 뚜렷하지 않아도,
단지 그날 내가 무너진 벽 앞에서
조용히 감정을 흘려보냈다는 기록만으로
충분히 한 편의 글이 된다.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를 채우고 쌓으라고 말하지만
폐허는 우리에게
무너져도 괜찮고,
비워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무너진 벽 앞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게 치유였다는 걸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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