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멈춘다는 건 가끔은 살아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늘 움직인다.
무언가를 향해, 누군가를 위해,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듯 바쁘게 흘러간다.
나 또한 한동안은 그런 속도 속에서 존재를 유지해 왔다.
멈추면 흐름에서 밀릴까 봐,
멈추면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 날,
말 한 마디 없이 조용한 공간에 앉아 있던 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들려온 건
누군가의 말도, 나의 내면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건 ‘고요’였다.
그리고 그 고요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멈춰도 괜찮다”고.
2. 고요는 침묵이 아니다, 가장 솔직한 대화다
고요하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상태다.
나는 그 조용한 틈에서
내 안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걸 느꼈다.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
“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문장들이 들리지 않게 다가왔고,
나는 그것들을 적지도, 말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기억하게 되었다.
고요는 결국 나 자신과 나눈 가장 깊은 대화였다.
그리고 그 대화가 끝나자
나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강박보다
지금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는 자기 허락을 얻게 되었다.
3. 멈춘 공간에서 비로소 마음이 따라왔다
폐허 속에서나 오래된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사람들이 사라진 공간에서 나는 마음을 늦출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늘 앞서 걷고, 감정은 뒤늦게 따라왔다.
하지만 멈춘 공간 안에서는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 순간, 나는 감정을 ‘정리’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나는 도착이라는 단어보다 ‘머무름’이라는 단어에 더 따뜻해졌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그 멈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어쩌면 콘텐츠는 움직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처럼 멈춘 감정에서 피어나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4. 고요는 일상 속에서 가장 소중한 언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산다.
사람의 말, 알림음, 재촉하는 시간.
그 모든 소리를 끄고 나면
처음엔 불안하지만, 곧 작은 기척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감정의 결,
소리 없는 속도로 자라는 생각들.
그건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나의 일부였다.
고요 속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나라는 사람을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일부러 멈춘다.
작은 카페 구석, 폐허가 된 집터, 일요일 아침의 거실.
어디든 좋다.
고요가 말을 걸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면,
나는 그곳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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