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사라진 풍경 속에서 나를 마주하다
우리는 대부분 ‘사람 많은 곳’을 기준으로 삶을 구성한다.
말을 건네고, 눈을 마주치고, 반응을 주고받으며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오히려 나 자신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래된 폐공장 한쪽 벽에 비친 내 그림자,
사람이 떠난 오래된 골목 끝에 혼자 서 있을 때나는 묘하게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아도,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조용한 장소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그건 소음 없는 확신이었다.
2. 고요한 공간은 나를 숨기지 못하게 만든다
혼자 남겨진 폐허나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처음엔 편안하지만 곧 낯설어진다.
내가 만들어낸 모든 ‘사회적 나’가 껍질처럼 느껴지고,
그 아래 진짜 나의 얼굴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웃는 얼굴로 살아도,
아무도 없는 공간 앞에서는 그렇게 웃을 필요가 없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피하고 있던 감정들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슬픔, 외로움, 두려움, 혹은
애써 감추고 있던 자격지심 같은 것들이
천천히, 그리고 무겁지 않게 올라온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며
“이 감정도 나다”라고 말해본다.
공간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진실하게 만든다.
3. 폐허의 공간은 나를 관찰자가 아닌 ‘존재자’로 만든다
사람 없는 공간에서
나는 ‘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예전엔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했다.
사진 속 내 표정, 목소리의 떨림, 걷는 속도까지도.
하지만 폐허 속에서는
그 모든 연출이 필요 없어졌다.
그저 숨을 쉬고,
조금 느리게 걸으며,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걸 그대로 느끼면 된다.
어느 폐공장 한가운데 서서,
창문 너머로 빛이 들어오는 그 장면을 바라보던 순간이 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존재하는 나’를 강하게 느꼈다.
감정은 선명했고,
마음속의 경계는 무너졌으며,
나는 그 순간 나라는 사람의 가장 투명한 단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4. 아무도 없던 그 공간은, 결국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공간은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너는 누구니?” 같은 철학적인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나는 정말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모든 질문은 조용했고,
대답도 선명하진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공간에 있는 나만큼은 가장 나다웠다는 것.
그래서 나는 종종 사람들 없는 공간을 찾는다.
폐허가 된 장소나 조용한 들판,
무너진 집터나 방치된 구조물 앞에서
나는 나를 더 선명하게 인식한다.
그 감정을 글로 남긴다면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도,
그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 안의 선명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공감’이 아니라,
각자의 고요함 속에서 만나는 자아의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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