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메라를 들었지만, 풍경은 피사체가 아니었다
사진을 처음 찍을 땐
‘예쁜 풍경’을 담고 싶었다.
빛이 좋은 시간, 구성된 프레임, 배경의 대칭성.
모든 것이 기준에 맞아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내 감정이 더 중요해졌다.
바람이 불던 날의 쓸쓸함,
붉은 하늘 아래 혼자 선 감정,
낡은 의자에 앉아 잠시 머무른 마음의 온도.
나는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찍고 싶었다.
내 안에서 스쳐가는 순간들을 기록하는 방식이
카메라가 되었을 뿐이었다.
2. 카메라는 결국 나를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장면을 찍는다는 건
어떤 감정의 연출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혼자 폐허를 걷거나,
고요한 골목을 지나며 찍은 영상은
늘 나를 위한 장면이 되었다.
거기에는 설명도 자막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스쳐가는 바람 소리,
천천히 움직이는 시선,
때때로 멈춰 선 내 발끝.
나는 그 장면을 통해
스스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상이나 사진은 결과물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3. 기술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
좋은 카메라와 편집 기술이 있어도
감정이 담기지 않은 영상은 금세 잊힌다.
반대로 흔들린 장면,
노출이 틀어진 프레임이라도
거기에 진짜 감정이 담겨 있다면
오래도록 다시 보게 된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건
그 장소의 멋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내 감정이 어떤 색을 띠고 있었는가였다.
그래서 나는 촬영 전에 늘 묻는다.
“지금 내 감정은 어떤가?”
그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
찍는 것보다, 느끼는 일이 먼저가 된다.
4. 감정을 찍는다는 것, 나를 남긴다는 것
이제는 감정을 찍는 일이
단지 콘텐츠 제작을 넘어
나를 남기는 작업이 되었다.
그날의 기분,
그 순간의 표정,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담은 정적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시간이 지난 후 나를 가장 솔직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풍경보다 감정을 찍는다.
좋은 장면보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게 나에게는
콘텐츠 이상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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