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된 구조물 위에서 흐르는 건 나뿐이었다
낡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가끔은 발걸음보다 더 큰 감정이 따라오곤 한다.
금이 간 콘크리트, 삐걱거리는 나무,
부서진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면서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 계단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속도를 견뎠을까.
나는 지금 얼마나 바쁘게 오르고 있는 걸까.
이 계단의 낡음 앞에서
나는 문득 내 삶의 속도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낡은 구조물은 말없이 나에게 속삭인다.
“천천히 올라와도 괜찮다”고.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숨을 고르게 된다.
2.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다
빠르게 걷는다고
시간이 덜 아픈 것은 아니다.
느리게 간다고 해서
게으른 것도 아니다.
나는 이 계단 위에서
시간이란 ‘수치’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어떤 날은 1분이 길고,
어떤 날은 한 시간이 짧다.
그건 분침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속도가 결정한다는 걸 이 계단 위에서 깨달았다.
낡은 계단은 시간을 쌓아왔고,
나는 그 위에서 시간을 되새긴다.
그리고 지금 내 속도는
아마도 지금 나에게 딱 맞는 속도일지도 모른다.
3. 높이가 아닌 방향을 바라보기로 했다
세상은 늘 위를 향하라고 말한다.
더 높은 곳, 더 빠른 길.
그러나 나는 이 낡은 계단을 오르며
높이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어디로 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가는지가
어디에 도착했는지보다 나를 더 많이 말해준다.
나는 계단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르는 동안의 감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지금 이 속도라면,
나는 나를 잃지 않고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길다면 그만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테니까.
4. 계단은 멈춰 있고, 나는 천천히 움직인다
이 낡은 계단은
누군가의 시간 위에 놓여 있다.
나는 그 위를 걷는다.
그리고 걷는 동안
내 시간과 감정도 천천히, 균형을 잡아간다.
브이로그를 찍는다면
이 계단 위에서 말없이 올라가는 장면만 담고 싶다.
말 없는 계단 위의 발자국 소리,
느린 호흡,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햇살.
나는 지금도 종종
낡은 계단 위에 머물며
삶의 속도를 다시 조율하곤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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