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 속의 그래피티 – 예술인가 낙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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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려진 공간 위에 덧칠된 누군가의 외침

사람이 떠난 공간은 고요하다.
그 고요함은 종종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묘한 위로를 주기도 한다.
나는 어느 날, 외곽에 버려진 폐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은 깨지고, 벽지는 뜯겨 있었으며, 천장에는 낡은 형광등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벽 한쪽에, 눈에 띄게 선명한 색의 그림이 남겨져 있었다.
붉고 파란 물감이 섞인 강한 곡선,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이질적이었지만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흔적이었고, 어쩌면 외침이었다.
폐허 속 그래피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풍경.
낡은 건물 벽화는 그 건물이 무너진 뒤에도 여전히 살아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듣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폐허 속의 그래피티 – 예술인가 낙서인가

 

🟩 2. 사라진 생활의 흔적들 속에서 피어난 감정

나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빈집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낡은 창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고, 벽에 남은 가족사진 한 장이 쓸쓸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마당 한 켠엔 녹슨 자전거가 쓰러져 있었고, 현관 앞에는 누군가 심어두었을 화분이 말라버린 채 남겨져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은 누군가의 일상이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 공간들을 렌즈로 하나하나 담을 때, 나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감성 필름 사진은 그런 순간들을 담아내기에 딱 맞는 도구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디지털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정적’과 ‘멈춤’의 감정을 필름은 고스란히 간직해주었다. 빈집 사진 촬영이 이렇게 가슴 깊이 파고들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 3. 잊힌 마을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

진안의 빈집 마을을 걷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섰다. 무너진 담벼락 너머로 자라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날 피해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마을은 더 이상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 아니지만, 그 속엔 아직 ‘살아있는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장소가 아닌, 이렇게 잊힌 공간을 여행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선택이지만, 그만큼 더 깊이 있는 감정을 꺼내게 해준다. 로컬 감성 여행지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마을은, 단순히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닌, 스스로를 마주하고 관찰하는 장소였다. 나는 이곳에서 여행자이기보다, 조용한 관찰자가 되어 흘러간 시간을 배경 삼아 나만의 장면을 만들어갔다. 진안 빈집 마을 여행이란 이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 4. 폐허가 아닌, 기억이 남은 장소로

우리는 흔히 사람이 떠난 공간을 ‘폐허’라고 부르며, 쓸모없고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진안의 이 작은 마을은 그런 의미에서 벗어난다. 여기에 남겨진 것들은 단순한 잔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삶의 흔적이며 기억의 파편이다. 나는 이 마을을 기록하면서, 단순히 감성 폐허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존재를 기억하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하찮은 골목이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진지한 풍경이었고, 그 기억은 글과 사진으로 남겨져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다. 지역 기록 콘텐츠란 결국 이런 감정의 전달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마이산 아래 이 조용한 마을은 오늘도 말을 하지 않지만, 그곳을 걷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무한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소다. 나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조용히 셔터를 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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