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간이 멈춘 골목에서, 조용히 나를 만났다
마이산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평화롭다. 누군가는 그 산의 형상을 신비롭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기묘하다고 표현하지만, 나에게 마이산은 늘 조용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산을 내려다보는 곳,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길가에 ‘그 마을’이 숨어 있다.
지나가는 이도 없고,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곳에 끌렸다. 어쩌면 한때 사람들의 웃음이 흐르던 담장과, 누군가 매일 쓸던 마당,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빈집들이 나를 부른 걸지도 모른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것은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걷고, 들여다보고, 느끼기 위한 도구였다. 바람은 가볍게 흘렀고,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레 내 발끝을 비췄다.
진안 감성 여행이라는 말이 생경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내 감정을 조용히 어루만졌기 때문이다.
마이산 빈집 마을. 이름도 없는 이 마을은, 어쩌면 이름보다 더 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 2. 잊힌 풍경 속에서 되살아난 기억의 조각
마당 한 귀퉁이에 놓인 붉은 양철 대야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 속엔 빗물이 고여 있었고, 그 안에 떠 있는 낙엽 하나가 어쩐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이 반쯤 열린 부엌 앞에는 오래된 찻잔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엔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찻잔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침마다 차를 마셨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나는 그 모든 상상을 껴안은 채, 셔터를 조용히 눌렀다.
감성 필름 사진이란,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빛은 빠르게 지나가고, 그림자는 천천히 따라왔다.
현관 앞에 놓인 오래된 슬리퍼는 한 쪽만 뒤집혀 있었고, 그 뒤엔 지워지지 않은 발자국이 마치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남아 있었다.
빈집 사진 촬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은 '빈' 것이 아니었다.
기억이 가득했고, 그 기억은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 안에 조용히 숨을 쉬었다.
🟩 3. 걷고, 멈추고, 그리고 울컥했던 어느 오후
내가 걷던 길은 점점 더 좁아졌고, 발끝에 부딪히는 자갈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방이 조용했다. 사람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음속 이야기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나는 몇 번이고 멈춰 섰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보았고,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시렸다.
진안 빈집 마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을 들여다보는 느린 여행이었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장소지만, 오히려 그런 공간이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흔히 감성 여행지 추천을 하면 사람들은 감각적인 카페나 사진 찍기 좋은 벽화를 떠올리지만, 이 마을은 그 어떤 장식도 없이 감정을 꺼내준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녀온 뒤에도 잊히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남는다.
그날 오후, 나는 사진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안고 돌아왔다. 눈물도, 미소도, 그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었다.
🟩 4. 그곳은 폐허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폐허’라 부른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기능을 잃은 마을, 잊혀진 자리.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늘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그곳은 분명히, 여전히 ‘살아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다만, 조용히 숨 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마이산 아래 이 마을을 감성 폐허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무너진 담벼락 하나조차, 벽에 남은 낙서 하나조차, 누군가의 시간을 품고 있었다.
지역 기록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마을은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사진들을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이다.
사람이 떠난 마을, 그러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마음.
그 조용한 풍경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에 다시 찾아가면, 나는 그때보다 더 조용히, 그리고 더 깊게, 셔터를 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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