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폐허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어떤 이는 폐허를 위험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 두 말이 동시에 성립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일본과 한국의 폐허를 마주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은 폐허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를 하나의 ‘기억 공간’으로 보존하거나, 예술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일본 폐허 여행의 매력은 거기 있다. 다 끝나버린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엔 여전히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폐허가 종종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분류된다.
사람이 떠난 공간은 곧바로 철거되거나 가림막으로 덮여버리기 일쑤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폐허를 찾는 건 ‘우연의 순간’이어야 하고, 그 우연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한국 폐허 문화는 기억을 숨기는 방식에 가깝고, 일본은 그 기억을 조용히 꺼내놓는 방식에 가깝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라짐’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 2. 사진 한 장으로 담아낸 무언의 풍경
나는 일본 북부의 한 작은 폐교를 찾은 적이 있다.
창문은 깨졌고, 책상은 기울어져 있었으며, 교탁에는 아직도 분필 가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너무 조용했고, 너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장소들이 소리 없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이런 폐허를 찾아 떠나는 ‘하이큐(廃墟) 여행자’들이 꽤 많다.
그들은 사진기를 들고, 아무 말 없이, 그곳을 존중하며 걷는다.
감성 폐허 사진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나라.
빛과 그림자,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의 경계에서, 일본의 폐허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많은 폐허는 이미 접근조차 불가능하게 막혀 있었고,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듯, 닫혀 있었다.
문화의 차이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느껴졌다.
🟩 3. 잊히는 것과 기억하는 것 사이
나는 항상 ‘왜 일본은 폐허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다.
그 해답을 찾은 건, 어느 일본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 덕분이었다.
그는 낡은 고택을 그대로 두고 살고 있었고, 그 안엔 돌아가신 부모님의 방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건 사라진 게 아니에요. 시간이 멈춘 거예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폐허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고 그 속에서 ‘공존’하는 문화.
그것이 일본 폐허 여행 문화의 핵심이었다.
반면, 한국은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다. 새것을 추구하고, 낡은 것은 버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로컬 감성 여행이라는 말이 한국에선 아직도 생소한지도 모르겠다.
남겨진 것들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방식,
그 조용한 존중이 우리에겐 조금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 4. 폐허라는 이름의, 아주 조용한 박물관
나는 폐허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폐허 속에 담긴 ‘침묵’을 좋아한다.
그곳엔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감정이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이 있다.
일본의 폐허는 그런 감정을 ‘전시’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두는 방식’을 택한다.
마치 박물관처럼, 하지만 큐레이터도, 입장료도 없는 박물관.
감성 폐허 여행지로서 일본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그 시작점에 서 있다.
그 시작이 더디다고 해서 늦은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겨진 것을 무조건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이 왜 남겨졌는지를 묻고, 때로는 그 앞에 조용히 서 보는 것이다.
기억의 공간을 기록한다는 건, 어쩌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그런 인사를 나누기 위해 폐허를 걷는다.
말이 없고, 사람이 없지만, 그 안엔 언제나 누군가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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