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방치된 공간들, 우리 기억의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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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속에서 잊힌 공간들이 말을 걸어온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도
문득 고요함이 들리는 지점이 있다.
무너진 담벼락, 폐쇄된 공장 창고,
출입이 통제된 옛 건물의 입구 앞.
모두가 그 앞을 무심코 지나치지만
나는 그런 공간 앞에서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곳은 방치된 채 남겨졌지만, 전혀 비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심 속 방치된 공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과 흔적을 품은 채
서서히 잊히고, 조용히 방치되어 왔다.
나는 그런 장소를 마주할 때마다
그곳에 쌓인 시간과 감정의 겹을 상상하게 된다.
이 도시의 하루하루가 빠르게 바뀌는 동안,
그 장소는 시간을 껴안은 채 멈춰 있었다.

도심 속 방치된 공간들, 우리 기억의 겹

 

 

2.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소에 감정이 남아 있었다

 

지금 내 주변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예전에는 상가였지만 지금은
간판이 지워지고 창문이 종이로 막혀 있는 오래된 건물.
낡은 계단 위에 놓인 자전거 바퀴 하나,
녹이 슨 철문,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담장.
처음엔 그저 방치된 건물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느 날 문득,
그곳이 한때 살아 있던 장소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스쳤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일했을 테고,
누군가는 그곳을 매일 드나들었으며,
누군가는 거기서 사랑을 시작하거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건물은 여전히 그 순간들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도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도시는 가끔, 이렇게 조용히 알려준다.

 

3. 공간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나는 종종 그런 장소들 앞에서
시간이 쌓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재개발되고,
낡은 건물은 철거되어 새 건물로 대체된다.
하지만 그렇게 지워진 공간일수록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은 더 오래 남는다.

학교 앞 문방구,
지하상가의 낡은 분식집,
폐쇄된 시네마의 입구 앞.
그곳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지만
기억의 배경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이다.
나는 그런 장소를 기억의 겹이라 부른다.
겹겹이 쌓인 감정과 시간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공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가 아무리 새로워져도
사람들은 자주 “여기, 예전에 뭐 있었는지 알아?”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건 장소의 정보가 아니라,
장소에 남은 감정의 조각을 되짚는 행위다.

 

4. 방치된 공간 속에 살아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일지도

 

도심 속 방치된 공간들을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나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 낡은 외벽에 내가 잊었던 마음이 붙어 있고,
그 멈춘 시간 속에 내가 미처 지나치지 못한 감정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공간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천천히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건 공간을 기억하려는 게 아니라,
그 공간 안에 비친 나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도시는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방치된 공간은
바로 그 ‘기억하는 인간’ 덕분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우리의 삶 역시 겹겹이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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