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가 사라진 순간, 감정이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조용한 곳을 찾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조용함은 단순히 평온함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이 크게 울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외부 자극이 사라진다는 뜻이고,
그 순간 내면의 소리가 상대적으로 더 커지기 때문이다.
말이 끊기고, 소리가 멎고,
공간이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을 때,
감정은 그 틈 사이를 헤집고 올라온다.
이건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마치 음악이 멈춘 후 울려 퍼지는 여운처럼
감정은 그 고요한 틈에 자신의 목소리를 새긴다.
나는 이런 공간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주 찾게 된다.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이
조용한 공간에서는 아주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2. 아무런 소리도 없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예전에 한 번,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낡은 전시장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에어컨도 꺼진 상태였고,
전등은 하나씩 꺼져가는 중이었다.
그 공간엔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문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만든 공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비로소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 괜찮은 거야?’
‘이 선택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문득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소리가 없는 공간은 내 감정을 증폭시켰고,
그 감정은 오히려 명확해지고 솔직해졌다.
말과 음악이 감정을 흐리게 만들 때가 있다면,
침묵은 감정을 선명하게 만드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3. 공간이 가진 소음보다 감정의 진동이 더 컸던 순간
어느 날, 폐건물 내부에서 감정을 정리하고자
조용히 앉아 있던 적이 있다.
창밖의 나뭇가지가 벽을 스치는 소리,
먼지 날리는 천장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석고 조각.
이 모든 게 ‘소리’는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고요함’ 속에 있었던 기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나 조언 없이
나 혼자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무너진 벽이나 낡은 바닥처럼
내 감정도 약간은 오래되고 거칠었지만
그만큼 진실했고, 가식이 없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음악도 켜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꺼두었다.
어쩌면 그 고요한 공간은
감정이라는 ‘비언어적 소리’를
더 또렷하게 울려주는 감정의 울림판이었던 것 같다.
4. 소리 없는 공간에서 내가 다시 살아났다
삶이 소란스러울 때는 감정도 불분명해진다.
너무 많은 말, 너무 많은 소리 속에
정작 가장 필요한 감정의 언어는 묻히고 만다.
그럴 때 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마치 나를 꺼내주는 숨겨진 열쇠처럼 작용한다.
내 안에서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은 내가 감정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그리고 매번 그런 공간을 경험할수록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감정은 말보다 침묵에서 더 크게 자란다.
소리가 사라진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나를 회복했고,
다시 살아갈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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