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에도 흐릿하게 남은 공간강화도 동쪽의 숲길 끝자락,산중턱의 작은 평지 위에는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에서 멀어진 폐허가 하나 있다.이곳은 적석사 터,절의 이름만 남아 있는 강화도의 잊힌 사찰 유적지다.통일신라 혹은 고려시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현장에는 절터를 암시하는 주춧돌과 석등 일부만이조용히 남아 있으며,별도의 안내판이나 시설도 존재하지 않는다.강화도 내 주요 해변에서 산길을 따라도보 또는 차량으로 10~15분 정도 이동하면 도달할 수 있다.등산 장비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흙길이 이어지므로 가벼운 산책화가 적당하다. 2. 사라졌기에 더 많이 남은 감정 절은 사라졌지만,그 자리는 텅 빈 공간이 아니었다.오히려 그 비움 속에서나는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구조를..
1. 성의 그림자 아래 머문 감정루마니아 중부의 후네도아라(Hunedoara) 지역.이 조용한 지방 도시에 다다르면,마치 중세시대의 한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코르빈 성(Castelul Corvinilor)**이 모습을 드러낸다.짙은 회색 석벽과 날카로운 첨탑,그리고 돌다리 아래 흐르는 깊은 계곡은수백 년을 견뎌온 고딕 건축의 무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코르빈 성은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고딕 양식 성으로,15세기에 건축된 후 여러 차례 확장과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한때는 요새, 궁전, 감옥의 기능을 모두 겸했으며현재는 박물관과 문화유산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루마니아 티미쇼아라 또는 시비우 지역에서 출발하면버스나 차량을 통해 3~4시간 이내의 거리로 도달할 수 있다. 2. 복원되지 않은..
1. 폐허가 된 이유, 그리고 남겨진 이유스페인 중북부, 아라곤 지방의 작은 마을 **벨치테(Belchite)**는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전쟁 이후 복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마을이다.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인해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공화파와 국민파가 이 지역에서 맞붙었고,무차별적인 포격과 총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졌다.전쟁 이후,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는이 마을을 의도적으로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전쟁의 폐해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상징적 장소'로 남긴 것이다.새로운 벨치테는 인근에 새롭게 조성되었고,파괴된 옛 마을은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역사적 비극이 있는 장소이기에,벨치테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스페인 현대사의 비극과..
1. 사라진 신앙의 자리에서 시작된 감정몽골 중부의 평원,거센 바람과 흙먼지가 지나가는 벌판에조용히 무너진 사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곳은 흡수굴 수도원(Karakorum ruins).13세기 몽골제국의 중심지였던 카라코룸에 세워졌던 수도원으로,지금은 일부 벽만 남아 사막과 함께 풍화되고 있다.2023년 방영된 EBS 〈세계테마기행〉 ‘몽골의 기억’ 편에서는낙타를 타고 이 유적지를 향해 이동하며현지 가이드가 사라진 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등장했다.방송은 유적지의 쓸쓸함보다도그 안에서 여전히 신앙과 감정이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나도 그 방송을 보고이 장소를 찾기로 결심했었다.그리고 지금,이곳의 부서진 돌 사이에내 감정을 하나씩 묻고 있다. 2. 무너진 공간이 감정을 끌어올릴 때 돌..
1. 세상의 끝에 숨겨진 마을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 깊숙한 곳,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도착한 이곳은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산 마을 중 하나인 **우쉬굴리(Ushguli)**다.이곳은 해발 2,200m에 위치해 있어겨울이면 몇 달씩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되곤 한다.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2022년 조지아 편에서도이 마을이 잠깐 소개되었다.방송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여전히 전통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과돌로 쌓은 탑들과 낮은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그 방송을 본 후,나는 그 마을이 내 감정 속 ‘고요함’과 닮아 있다는 걸 느꼈다.복잡한 도시를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2. 멈춘 시간, 멈춰 있던 감정 우쉬굴리는 돌길 하나하나가수백 ..
1. 사막 끝에서 만난 멈춘 시간볼리비아 우유니(Uyuni) 외곽,하늘과 땅 사이를 붉게 물들이는 햇살 아래,무수한 기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달리지도 않고, 소리도 없이사막 한가운데 녹슨 채로 버려진 철덩어리들이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이곳은 ‘기차무덤(Cementerio de Trenes)’이라 불린다.19세기 말, 우유니가 광산 수출의 거점이던 시절을 지나산업이 무너지자 기차들은 그대로 이곳에 놓여졌다.지금은 움직임 없이 멈춘 시간의 잔해로 남아 있다.2025년 방영된 tvN 〈지구마블 세계여행〉 15회에서도이 장소가 짧게 등장했다.출연진들은 실제로 기차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UYUNI’라 적힌 구조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방송은 스쳐 지나갔지만,그 장면 하나로도 이 공간의 정지된 감정은..